아빠는 요리중/맛있는 요리

사춘기 아들 여자친구가 다 남긴 아빠표 까르보나라

석스테파노 2012. 6. 1. 06:00

10대 두명의 자식을 둔 아빠로서..

자식과 나누는 행복도 있지만..가끔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힘겨루기와 포기와 접근과 회피와 회유와 온갖 정치판 같은...

술수까지 쓰게 되는게 요즈음이다..

10대들의 사생활(데이비드 윌시, 곽윤정 옮김, 2011, 시공사)이란 책을

마눌님이 읽고 있기에 슬쩍 함 열어보았다.

나자신도 10대를 거쳤으면서 어째서 우리 자식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며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지..왜 저런 반항이 나오는지..대화의 방법은 없는지

그저 고민만 했을뿐..상담이라는 것을 받아 본적이 없다.

물론 책에서 이야기하는 뇌구조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은 아직 더 봐야겠지만..

대략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졸업전에 사춘기가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영양공급이 좋아져서인지 초등학교부터 24살까지도 사춘기라고 한다니..헐...

외형적으론 성인이지만 어린이도 아닌 성인도 아닌 상태의 혼란기를 10년도 넘게

겪는 사춘기의 아이들이 한편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큰아들 디모테오와 한참..격돌의 시간이 있고 난뒤..

돌연 친구들과 약속을 할테니...점심을 까르보나라도 해달란다..참..

통했다 싶으면 배신을 때리고..그래 이젠 담쌓았다..하면 손을 내미니..원..

그게 사춘기겠지..저 책을 함 잘 읽어봐야겠다..

 

어릴땐 그져 이쁘고 귀하고 신기하시만 했던 자식..

이젠 키도 나를 넘어서고 힘도 세져 든든하게 느껴지는 디모테오..

당구도 같이 치고 잡담도 나누면서 둘이서 먹기도 했는데..

 

저자는 환경호르몬의 영향도 언급하더라..

바로 이런 것들도 문제다..

베이컨이 조미료 덩이리라 그냥 먹일 수 없어..팔팔 끓여보면..

첨가제와 발색제가 그대로 나와준다..그 색을 보면 정말 먹이고 싶지 않다..

근데..이거 빠지면 뭔 맛이라고 하니..ㅠㅠ

 

반항기라고 불리던 사춘기에 기억나는 제대로된 반항은...

집 나겠다고 함 해본적이 있었다..지금 생각해도 웃음만..ㅋㅋ

그러나 아마 그때 엄마는 무척이나 놀랬고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말 잘 듣던 큰아들이..패도 반항 한번 안하던 기둥이..

요리도 그렇다..

믿었던 필살기가 왕창 박살나거나..

믿었던 재료에서 정말 맛탱이 가버린 냄새가 날때는..이건 참 당황 그 이상이다..

 

재료를 썰때도 그 나름의 정성이 있어야하겠다..

씹히는 맛의 베이컨은 조금 크게..양념으로 들어가 주는 곁야채들은 살짝 쪼사주고..

버섯은 크기가 이뻐서 걍 써본다..

누가 가르쳐준 아니지만..요리가 뭐 별거냐..해보다 보면..ㅋㅋ

실수도 하고 성공도 하고..그런데 그 성공이 남들이 볼때는 영 아닐 수도 있고..

음식은 법이 아니다..

맛일 뿐이다..맛...기준도 규격도 없이 자유로운 맛..

 

음식을 선택하는데는 몸 상태에 따른 끌림이 상당히 작용을 한다..

몸이 피곤하면 뜨끈한 죽이 생각나기도 하고..

뭔가 허전하다 싶으면 보신탕이 생각나기도 한다..

울 아이는 요 까르보나라가 왜 끌렸을까..

아빠가 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요리중에..이넘이 친구들에게 젤 친숙했던걸까...

우유와 치즈..베이컨..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재료다..

 

이 생각..저 생각..다행이다..

그나마 간단한 면 요리라서..ㅋㅋ

 

계란까지 삶아서 노른자도 부셔서 넣었건만..

뭐 그져 펑범한 스파게티...

 

디모테오 여자친구(이성친구가 아닌 단지 남자와 반대되는)와 두명까지..

네넘들에게 한접시씩 담아준다..

 

급히 아침에 공수해온 마늘바게트..

엡타이져랍시고 주었는데..별로 먹지도 않는다..

 

피클이나 단무지라도 내놓을걸..

마눌님 신경전에 살짝 들어간 느낌이라..

얼른 차려주고 마눌님 손붙잡고 밖으로 나간다..

지들끼리 떠들면서 편하게 먹으라고..

 

가장 작게 담아준 여자친구 접시..

12시반정도가 되었으니 이정도는 먹겠다 싶었다..

물론 사내넘들은 더 많이 담아주었고..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다..

돌아와 보니..벌써 팽게치고 나갔다..

디모테오와 다른 한 녀석만 거의 먹었을뿐...

여자친구와 한넘은 거의 다 남겼다..

순간..불끈 치솟는 화가...아..이넘들이...

다 굳어서 뻐덕뻐덕한 음식들을 다 버렸다..아..정말 이건..

음식을 남기는 버릇은 어디서 배웠으며..많은면 많다고 덜어달라고 하지도 않는..

이건 가정교육이 문제라며 투덜투덜, 설거지하면서 대빨 나온 내 입에..

마눌님도 어이가 없는 듯 하다..

 

'밥맛이 극락이구나'란 책에 부석사 주경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음식의 양은 맛 이상으로 중요하다'

 

다 남긴 두넘들은 토요일 아침이니 다들 늦게 일어나서 브런치로 먹었을 것이고..

12시반은 지들 영화보러 가기위해 만나는 시간 전일터..

먼저 물어봤어야 한다..이름만 묻지말고.(기억도 못할거면서..ㅠㅠ)

아침은 먹었니..까르보나라를 할건데..맘에 드니..

혹..베이컨이나 우유 버섯 치즈에 알러지는 없니..

양은 어느정도 먹을 수 있을까? 음식점에서 나오는 정도보다 많이 아님 작게..

이런 배려로 먼저 음식을 시작했어야했다..

난 그져 자랑스럽게..요리하는 아빠야..그러니 이렇게 주면 먹어라..했던거다..

그저 자리만 피해주면 다인줄 알았던 멍청한 아빠..

 

내가 사춘기를 겪고 있다..정말..

날씨와 분위기까지 고려하면서 국수의 양을 정하던 주경 스님의 배려와 정성은..

단촐한 국수 한그릇이라도 최고의 음식이 되었다..

그런데 난..뭐냐..

버리게 만든건 바로 다 내 탓이었다. ㅠㅠ